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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호 칼럼] 대가야궁성지, 추가 발굴조사 뒤 따라야  [2017-6-20]
그러나 이번 발굴로 대가야궁성지가 확인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접근을 요구하고 싶다. 고령향교 일대가 대가야궁성지라는 추정의 근거는 3가지이다. 첫째,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9권 ‘고령현’조에서 ‘어정(御井)’을 설명하는 기사에 “현의 남쪽 1리에 대가..
[박장호 칼럼] 대가야궁성지를 찾아서  [2017-5-30]
고령지역은 대가야의 도읍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대가야의 도읍지가 현재의 고령지역에 있으라는 법은 없다. 고령군은 대가야가 562년 신라에 병합된 후 수 많은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1906년 성주군의 인곡·운라·흑수·도장·소..
[역사칼럼] 역사 바로 잡기(XlI), 임나(任那)는 한반도가..  [2015-8-3]
한일 고대사에서 가장 논란의 핵심은 바로 ‘임나’의 위치이다. 일본은 <일본서기>에서 ‘신공황후’가 만삭의 상태로 삼한 정벌에 나섰다는 신공기 49년(249년) 기사를 들어, 한반도에 ‘일본부’를 설치하고 지배하였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해 왔다. 신공황후..
[역사칼럼] 역사 바로 잡기(Xl), ‘고천원’은 일본의 한..  [2015-7-27]
고천원이 무엇이며, 가야산의 우두봉이 왜 중요한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신화를 우선 알아야 한다. ‘고천원비’ 옆면에 새겨진 ‘건립 취지문’에는 “이곳이 가야제국의 宗家(종가)인 任那(임나)가야의 옛 땅이며, 일본문학박사 마부치가 일본 신화 속에 나오..
[역사칼럼] 고령읍의 과거 명칭은 무엇일까?  [2014-11-17]
고령읍의 과거 명칭은 어떠했을까? 고령군의 명칭은 고서에 몇 차례 언급된 것을 유추해 변천과정을 짐작할 수 있으나, 고령군내의 읍면동의 명칭변경은 1914년 일제에 의한 변경 이후를 제외하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91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면폐합에 관한 기록(경상북..
[역사칼럼] 다시 쓰는 현대사(Ⅶ), 서북청년단 출몰로 본..  [2014-10-20]
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되어야 한다. 특히, 국가 권력에 의해 저지르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국가 권력은 어떠한 경우라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그 책임 또한 무겁게 다루어져야 한다.
[역사칼럼] 대가야의 재조명(Ⅱ), 아픈 역사도 역사의 현..  [2013-10-31]
때문에 이 두 비석을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원래의 위치로 반환,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진 ‘任那大加耶國城址비’는 1986년 당시 독립기념관의 개장을 앞두고 유물이 부족하자, 정부에서 나서 전국의 시군에 있는 일제식민과 관련된 유물·유적을..
[역사칼럼] 대가야의 재조명(Ⅰ), 우륵은 신라로 망명하..  [2013-10-17]
우리 고장 고령은 대가야국의 도읍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가야국이 역사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김부식의 저서 『삼국사기』가 처음이다. 그러나 동시대를 공유했던 백제, 고구려, 신라에 비해 대가야의 역사 기록은 빈곤하기 짝이 없다. 때문에 다른 나라와의 국제정세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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