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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칼럼

[박장호 칼럼] 냉엄한 국제사회 질서 인식 못한 한국 외교 안타깝다

[403호] 입력ㆍ발행 : 2018-10-23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유럽 5개국 순방을 다녀왔다. 18일부터 이틀간 벨기에에서 열린 아셈(아시아-유럽정상회의, ASEM) 정상회의 참석 길에 프랑스와 이탈리아, 교황청, 덴마크 등을 국빈 방문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과도 정성회담을 가졌다.
이번 순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국제사회의 동조를 요청하는 의지를 보였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내려놓으면 내려놓을수록 핵에 의존하지 않고도 북한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줄 필요가 있다”며, “북한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비핵화를 진척시키면 제재완화가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의 반응은 예상대로 냉담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의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비핵화가 완전하고 불가역적이며 검증 가능해야 한다”고 말해 북한의 무조건적인 비핵화 요구와 대북제재 완화를 별건으로 선을 그었다.
아셈 의장 성명에서도 참가국 정상들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및 관련 프로그램과 시설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폐기(CVID)할 것”을 촉구했다. 경제제재 완화는 그 다음에 고려할 문제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외교 사고나 마찬가지”라며 지금 국제사회가 북핵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고 엉뚱한 부탁을 한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을 북한의 에이전트(대리인, agent)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앞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는 대단히 중요하다. 비핵화를 이룰 때까지 유엔 안보리의 제재에 대해서는 모두 충실히 따르고 그 다음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한국도 그 틀을 지키면서 남북 관계의 개선을 위해서 노력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럼에도 프랑스의 동의를 받아내지 못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한프 정상회담 이틀 후인 지난 17일,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프랑스를 국빈 방문했다. 프랑스와 일본은 G7(세계 7강 주요 선진국 간의 회담,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이탈리아·캐나다) 일원이기도 하다. 프랑스와 일본의 정상회담에서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만들기 위해 일본 자위대와 프랑스 군의 공동훈련 등 안보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아베 총리는 프랑스가 남태평양의 섬을 영토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아시아ㆍ태평양지역 국가인 프랑스와 협력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프랑스와 한국은 우방국으로 가까운 나라다. 그러나 프랑스 입장에서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우방국이며 더 가깝다는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문재인 정부가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북핵이 프랑스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지도 않으며 국내 상황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북핵으로 인해 일본과의 관계가 더욱 더 돈독해져 이익을 보는 것은 프랑스다.
프랑스는 2013년 일본에 폐연료봉을 수출했다. 정확히 말해 폐연료봉 재처리를 통해 추출된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섞어 만든 재활용 핵연료인 혼합산합물(MOX)이다. 이 혼합산화물을 원전의 연료로 사용한다는 명분이지만 언제든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원료이다. 핵무기 원료는 원재료보다 오히려 재처리된 혼합산합물이 효능이 좋다. 프랑스가 일본에게 핵무기 재료가 되는 폐연료봉의 물질을 수출한 것도 엄연히 핵 확산금지조약(NPT) 위반이다. NPT에 따라 핵무기를 보유한 프랑스는 핵무기 개발이 될 수 있는 어떠한 물질도 판매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판매가 가능했던 것은 프랑스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프랑스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에 대해 스스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프랑스로부터 핵무기 1만~2만개를 만들 수 있는 원료를 구매했으며, 프랑스는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국제사회는 냉엄하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되기 5년 전 미국과 일본은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체결했다. 미국과 일본이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서로의 지배를 인정한다는 협약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한제국은 미국을 우방국이라 여겼다. 미국과 일본 간에 이러한 밀약이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대한제국은 미국에게 계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냈지만 미국은 더 큰 이익을 위해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인정해 준 것이다.
이번 아셈 정상회의에서 프랑스와 영국이 보인 모습도 113년 전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원칙과 논리로 따지자면, 현재 핵무기를 보유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도 NPT에 따라 핵무기를 감축해야 하며 최종적으로 폐기해야 한다. 그러나 NPT 규정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핵무기는 전략자산이라며 오히려 더 양산하고 있다. 이런 프랑스에게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자고 허울 좋은 세계평화를 피력하며 상임 이사국으로서의 역할을 당부하는 것은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발상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되면 될 수록 가장 이익을 보는 것은 일본이다. 때문에 이번 마크롱 대통령의 답변은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해 계속적으로 논란을 이어가고자 하는 일본의 속내를 대변해 준 것이다.
프랑스의 동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일본으로부터 얻는 이익보다 더 큰 이익을 줘야 한다. 가령 남북철도 연결에 프랑스 자본을 참여시켜주는 것이다. KTX의 개발사인 TGV를 수입한 대가로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훔쳐간 외규장각 도서를 영구임대 형태로 반환받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2층(복층) KTX 개발이 실패로 좌초되었다. 프랑스에서 개발한 2층 모델인 TGV 듀플렉스의 수입 가능 의사만 전해져도 프랑스는 과거 사례처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대변자 역할을 할 것이다. 더욱이 프랑스는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사업(F-X 사업) 기종선정에서 박근혜 정부에서의 정치적 결정으로 인해 쓴맛을 봤다. F-X 사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적어도 기종선정에서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가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신뢰만 줬어도 프랑스의 반응이 이처럼 냉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국내 기술 부족으로 자체 개발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나라의 제품을 구입할 수 밖에 없으며, 그 구매처를 미국에게만 올인 해 국제사회에서 외톨이를 자처할 이유는 없다. 또한 한반도 내에서만 미국의 영향력이 클 뿐,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이 그처럼 절대적이지는 않다. 무엇보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동의부터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동의는 절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순방에서 국제사회에 호소한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로드맵은 틀린 말이 없다. 북한의 비핵화는 이루어져야 하고 그 단계에 맞춰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 이를 국제사회가 약속해 견인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에 아무런 대가 없이 영국과 프랑스가 동조하며 나설 일은 만무하다. 영국과 프랑스의 기본적인 태생이 제국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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