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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의 문학공간

[윤영의 문학공간] 놓아라

[273호] 입력ㆍ발행 : 2016-01-04

안성에 있는 미리내성지를 둘러보고 대구로 오던 길이었다. 어디쯤이었나. 잔설이 다문다문 덮인 산중턱에 흰 건물의 요양원 한 채가 보인다. 꼭대기에 적힌 큼지막한 세 글자를 보는 순간 멈추어 설 곳을 뻔히 알면서도 심하게 요동치는 나침반의 바늘처럼 가슴이 떨렸다. 싱그러웠던 생은 넘겨주고 지친 육신을 껴안고 데리고 들어간 병원에서 그네들이 극구 붙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놓아라’
이내 동승한 몇 명은 놓고 버림의 대상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한다. 누군 돈이 모든 욕망을 부채질한다고, 누군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누군 시답잖은 인연들을 정리해야 한단다. 나는 애써 모른 체했다. 아니 모른 체가 아니라 여태 놓아버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게 진실하겠다. 눈을 감았다.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이다. 자꾸 캄캄해진다.
아뜩했던 마음도 잠시뿐. 현실은 생채기 보듬을 시간도 없이 팽팽하게, 내 잘난 맛에 사는 데 익숙해 있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이 왔다. 이즈음 y 시인이 ‘내가 죽으면 이런 풍경이 올까. 아무도 오지 않는 장례식장에서 오래오래 술을 마셨다.’라는 글과 텅빈 영안실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흰 비닐로 덮인 수십 개의 테이블은 몇 시간째 손님을 기다렸을까. 실끈만큼의 인연도 불러들이지 못했는지 적막만이 얹혔다. 구석진 테이블엔 쭈그러진 캔맥주 세 개 와 반쯤 마시다가만 소주 한 병과 식은 국밥과 김치 접시에 걸쳐진 나무젓가락이 가지런하다. 옆에 놓인 종이컵의 단풍잎은 저리 고운데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오지 않는 사람도 말 없긴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렇듯 전부 어딘가에 걸쳐놓은 인생 같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한 장의 사진이 천근만근 묵직하게 다시 파고든다.
내 버릇 중에 하나가 안 풀리면 꼭 꿈으로 다가온다. 지난밤에도 그랬다. 비질이 말갛게 난 초가집 마당을 돌아가니 뒤란에 작은 도랑이 있었다. 어찌나 물이 맑은지 연둣빛 개구리밥의 핏줄이 선명했다. 도랑을 건너 숲으로 드니 곧 피어날 수백 개의 눈을 매단 복숭아나무 한그루가 내게 물었다. 왜 이 젊은 나이에 도화천을 건너왔냐고 했다. 씨익 웃으며 언덕에 올라가니 <천국 가는 길>과 <잘 먹고 잘사는 길>로 안내판이 꽂혔다. 망설임 없이 푯말 두 개를 동시에 뽑아 내려오니 이웃들이 문밖에서 부러움과 찬탄을 보내왔다. 이내 찬탄은 비난과 동시에 오물로 범벅이다. 그리곤 처마 끝 그늘을 빙빙 돌며 울고 있는 내가 보인다. 일어나니 다행히도 꿈이다.
비록 꿈이었지만 자주 앓고 나니 몸과 기분이 그리 개운하진 않다. 난 그동안 말끔한 선택권 한 장 없으면서 어디에도 몸을 들이지 않으면서 어디에도 들였다. 이 한생을 내칠만한 용기는 꼬투리만큼도 없었다. 과도한 불안감이었거나 예수나 부처의 포용력을 흉내 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늘 착했으며 나의 앞날은 여전히 환해지고 채워질 거라 믿으며 주위의 인연에 불편한 너그러움을 베풀었다. 절정에 닿지 않은 발화점에 성냥을 그어대니 늘 희나리에 머물렀음에도 활활 타는 불꽃이었다고 착각했다. 명백한 건방짐이 아니던가.
어기적어기적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정처 없었으며 적적함에 안간힘을 쓰며 매달렸다. 시시때때로 내가 숨 쉬는 숨결에서 텁텁한 기운이 느껴졌으며 미래가 암울해졌다. 어둑한 문간을 넘어가니 바람이 다녀가거나 비가 다녀가거나 배고프면 우거짓국에 게걸스럽게 밥 말아서 먹는 내 모습만 보였다. 결국, 생니 앓듯 놓을 것에 대해 앓아누우면서 미루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놓을까? 마음 비우기는 내게 버거운 일이라 우선 단순한 기록물과 가벼운 것부터 찾기로 했다. 여태 정리하지 못했던 이유도 좀 더 솔직해져 보면 하나의 거래였을 것이다. 삶이 송두리째 외상 장부에 기록되거나 인간 대 인간의 교환이었거나 묵시적인 당부도 포함하고 있었으리라. 생의 기울기에서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겠다는 욕망도 내포되어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먼저 휴대전화를 열었다. 8백여 명의 당신들이 일제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내가 그토록 우상처럼 떠받들며 나도 모르게 하인으로 살았던 전화기 세상은 소우주였다. 들여다보고 있자니 무에 이리 거미줄인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십여 년이 흘러도 안부 한번 건네지 않은 사람,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사라지고 없는 식당들과 암호로 가득한 번호들이 수두룩하다. 한데 남길 사람과 버릴 사람을 구별하기도 쉽지만은 않았다. 혼자만의 기준을 만들어 실밥을 뜯어내듯 뜯어냈다. 마지막으로 개인사 생활 전부를 보여줬던 스토리에 수천 장 의 흔적이 담긴 사진을 닫았다.
조금 더 가벼워지기 위해 집안을 둘러본다. 물건마다 사연이 있어 버리지 못한 것들이 그득하다. 서랍마다 구멍마다 넓혀가며 채워가며 난리가 났다. 한번 들이면 삭는지, 터지는지도 모르고 그저 꽃밭인 양 착각하며 살았다. 이들이 한사코 제발 나를 버리지 말라는 애원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감해졌다. 이렇듯 버렸다는 것은 기억 속의 한 공간도 삭제했다는 것이다.
이 한 줌밖에 되지 않은 내 몸을 주위로 천지간 만물과 인간관계들이 과도할 만큼 왕국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잠시나마 가볍다. 세월이 몸을 데려간다는데 무얼 그리 쟁여놓고 갈 거라고, 불현듯 눈에 들어온 ‘놓아라’라는 세 글자에 놓지 못했던 나에게,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장례식 영정 사진 속 당신이 묻는다. ‘말끔하게 살다 이곳으로 올 자신이 있느냐고’말이다. 먼 길을 떠나 몸 뉘일 곳을 찾아 흘러들고 보니 그늘 한 줌 없는 사막이라면 어쩌겠는가. 날은 저물고 내려앉은 어깨 일으켜 세워 돌아오기엔 이미 늦을지도 모름을 나는 여태 왜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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