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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율의 촌감단상

[우종율의 촌감단상] 석구야, 석구야

[272호] 입력ㆍ발행 : 2015-12-28

<1>
오락실 한 쪽에서 왁자지껄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의 학생들 무리였다. 발걸음이 늦추어졌다. 그 중엔 여학생도 섞여 있었다. 지나가는 이들은 혀만 찰 뿐 누구 하나 들어가 싸움을 말리는 이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피해가고 있었다. 말려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괜히 들어갔다가 봉변이라도 당할까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눈에 들어오는 얼굴이 있었다.

“너, 석구 아니냐.”
“ …… ”

아이는 급히 머리를 숙였다. 다가가 살펴보니 분명 석구였다. 아이의 손을 잡았다. 저희들끼리 무슨 신호라도 보냈는지 아이들은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지거리를 하곤 뿔뿔이 흩어졌다. 깨진 유리창, 흩어진 음료수병 들로 난장판이었다.

“야, 이놈들아, 어딜 가! 변상을 해야지.”

어디에 있었던지 주인인 듯한 중년여자가 쫓아 나오더니 악다구니를 했다.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빠져 나왔다.
석구는 많이 변해 있었다. 다부진 체격에 제법 눈매도 빛나는 고등학생으로 자라 있었다. 그동안 주위 친구들에게 몇 번이나 석구의 소식을 알아봤지만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모른다고 하던 터였다. 아버지의 소식부터 먼저 물었다. 예전처럼 술로 세월을 보낸다고 했다. 얼마 전엔 지나가는 차에 또 뛰어들어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고 했다. 석구는 친구들 몇 명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 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그럴수록 이렇게 다니면 되느냐,  더욱 힘을 내라며 훈계를 하였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다.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언제 한번 연락을 하라고 했다. 돌아가는 아이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같았다.


<2>
석구는 운영했던 학원 반지하에 살고 있던 아이였다. 늘 말이 없고 풀이 죽어 학교와 집만 오가고 있었다. 표정 없는 얼굴엔 꿈마저 없는 듯했다. 석구의 집은 아버지 때문에 늘 시끄러웠다. 건축 노동일을 하는 석구의 아버지는 술주정이 심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집에 와선 가족들을 못살게 굴었다. 아내를 괴롭히는 건 다반사고 심지어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석구까지 때리곤 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온 날이면 어두운 골목에 나와 있는 석구를 자주 보았다. 이웃에서 그를 말리기라도 하면 거머리처럼 눌러 붙어 사람을 못 살게 굴었다.
‘당신이 내 술 먹는데 돈 한 푼 보태줬나.’라며 대드는 데는 어느 누구라도 간섭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건물 주인인 노부부조차 집세가 밀려도 옳게 말 한 마디 못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데 석구 아버지와 딱 마주쳤다.

“선생님, 병원에 가려고 하는데 돈 조금만 융통 좀 해 주세요.”

하도 애절하게 간청을 하는지라 주머니를 털어 건네주었다. 이튿날 저녁, 석구어머니가 조심스레 사무실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어젯밤에 돈을 주었느냐고 했다. 얼버무리고 있는데, 눈물부터 먼저 흘렸다. 그 돈으로 술을 마시고 집안 가재도구를 다 부쉈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작은 회사에 잘 다니며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았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빚보증을 잘못 써 준 게 화근이었다. 그야말로 살던 집에서도 맨 손으로 쫓겨나왔다고 했다.
그 일이 있는 후로 석구 아버지는 일을 손에 잡지 못하고 매일 술로 나날을 보냈단다. 석구 어머니의 식당일로 근근이 가계를 이어가지만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폭력까지 가세하는 데는 한계가 온다고 했다. 얼굴을 숙인 석구 어머니의 얼굴은 이미 멍든 자국이 오이껍질처럼 번져 있었다.


<3>
다음 날부터 학교에서 돌아 온 석구를 학원으로 불러들였다. 학교에서도 거의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있었고, 학습 진취도 또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많이 처져 있었다. 어찌 석구만을 탓하랴. 한 단계 낮춰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그나마 아이는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는 듯했다. 그러더니 아이는 하나하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가 밉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언젠가는 아버지도 예전으로 돌아올 것이다. 나는 커서 대기업의 사장이 되어 돈을 원 없이 벌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 아버지가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아버지 건강 때문에 걱정까지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일찍 집에 들어오면 석구 아버지가 아이를 찾으며 동네를 돌아다니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혹, 학원으로 올라올까 걱정이 된 건 아이 뿐만 아니라 나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
며칠 있다 기회를 봤다. 그 날은 마침 석구 아빠가 술을 취하지 않은 날이었다. 그나마 해가 떨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기회를 잡을 수도 없었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배회하는 그를 보고 조용히 불렀다. 묵묵히 듣고 있던 그는 연신 미안하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피붙이라곤 석구 하나 밖에 없는데 애비가 능력이 없어서 미안해 죽을 지경이라고 손을 잡고 울었다. 그에게도 이런 감정이 있었구나, 매일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을 들어보니 그의 마음의 병은 이미 깊어져 있었고 몸도 어느 한 군데 성한 데가 없다고, 그래도 병원에 갈 여력도 없다고 넋두리를 또 했다.
며칠 전 석구 엄마가 당부한 말이 생각났다. 최선을 다해 석구를 가르쳐 볼 테니 학원으로 올라오진 말아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4>
그럭저럭 방학도 끝나갈 무렵 어느 날 오후였다. 아이들과 한창 수업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자동차의 급브레이크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사람이 차에 치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사람 죽네. 사람 살려!”

그 순간이었다. 수업을 받고 있던 석구가 총알같이 튀어나갔다.  비명을 지른 건 술에 취해 차에 뛰어든 석구아버지였다. 그 후 며칠 동안 석구는 학원에 나오지 않았고 일층 석구네 집엔 문이 잠겨 있었다.

석구를 다시 본 건 개학을 하고 한창 바쁠 때였다. 그동안 병원에 있었다고 했다. 다음 날 석구 아버지는 목발을 집고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나를 보더니 계면쩍은 듯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아 희멀갰다. 얼핏 보아 손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며칠 뒤 석구네 식구는 밤에 주인집 부부에게만 말하고 어디론가 이사를 갔다고 했다. 그것이 석구와의 이별 이었다.
석구 아버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병원에선 치유할 수 없는 병에 시달렸고 집에선 아이에게조차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가장의 비애. 그가 취한 최후의 선택, 더군다나 술에 취해 그런 행위를 했다. 몸뚱이 하나 남은 것을 던져 남의 힘으로 살아가려했던 석구 아버지. 어디 세상이 그의 생각처럼 단순하게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5>
석구로부터 전화가 온 건 막바지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월 중순 쯤, 병원 영안실이었다. 빈소엔 술에 취하지 않은 멀쩡한 얼굴의 석구아버지가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등신 같은 양반, 꼭 이런 자리에서 웃으며 만날 게 뭐람.’

석구는 상주 석에 외로이 앉아있었다.
다가가자 벌떡 일어났다.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오히려 내가 아이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휘 둘러보니 장례엔 관심도 없는 듯, 두건을 쓴 몇 몇 백관이 소주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석구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어제도 친구들과 어울려 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전화가 왔단다. 술에 취해 또 차에 뛰어 들었다는 것이었다. 사고원인은 보행자 과실. 구급차에 실려 가며 희미하게 석구를 찾았다고 했다. 결국 석구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
“…… 집 나간 지 오래 됐습니다.”

석구야, 석구야.
지켜주지 못 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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