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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역사칼럼] 고령읍의 과거 명칭은 무엇일까?

[225호] 입력ㆍ발행 : 2014-11-17



고령읍의 과거 명칭은 어떠했을까?
고령군의 명칭은 고서에 몇 차례 언급된 것을 유추해 변천과정을 짐작할 수 있으나, 고령군내의 읍면동의 명칭변경은 1914년 일제에 의한 변경 이후를 제외하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91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면폐합에 관한 기록(경상북도 편)을 살펴보면, 고령군은 당시 16개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중 내관면(乃館面) 후암동(後岩洞)을 덕곡면(德谷面)으로, 장음면(長音面) 사부동(沙鳧洞) 및 기산동(箕山洞)을 성산면(星山面)으로, 양천면(良泉面) 곡동(谷洞) 및 외동(外洞)을 고령면(高靈面)으로 옮기는 등 9개면으로 조정하였다. 당초 임천면(林泉面) 및 쌍동면(雙洞面)을 합쳐 가야면(伽倻面)으로 통합하는 것이 계획되었으나, 두 면 모두 상당 호수 및 지세가 있어 각각 독립 존치하는 것도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인정되어 통합되지 않았다가 1930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쌍동면의 ‘쌍’자와 임천면의 ‘임’자를 합쳐 쌍림면(雙林)이 되었다.



그렇다면 기록에 나오는 1914년 당시 고령면의 명칭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읍내면(邑內面)’이다. 일제는 고령군 읍내면 일원을 비롯해 내관면(乃館面) 일원과 양천면 내 곡동 및 외동을 합쳐 ‘고령면’으로 행정구역을 변경·개칭하였다. 때문에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고령읍의 명칭은 1914년 일제에 의해 최초로 사용된 것이다.
같은 기록 조사서 ‘면의 구역분할 사유 조서’의 이유를 살펴보면, 내관면(乃館面)에서 후암동(後岩洞)을 분할하여 덕곡면(德谷面)에 편입을 요하는 것은 이 동은 큰 산악으로써 내관면의 다른 부락과 분리되고, 그 산악이 덕곡면에 면하는 산록에 위치함에 따라 장래 내관면을 읍내면(邑內面)과 병합하고 면사무소를 그 중앙에 둘 때에는 2리 이상 산악을 우회해서 교통으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현저하게 불편하기 때문이다.
장음면(長音面)에서 사부동(沙鳧洞) 및 기산동(箕山洞)을 분할해서 성산면(星山面)에 편입을 요하는 것은 이 2동은 장음면의 다른 동과는 산악에 의해 분리되지만, 가현면(加縣面, 장래의 성산면)과는 평지로 연속되므로 장음면을 운수면(雲水面)과 병합하고 그 중앙에 면사무소를 둘 때에는 자못 불편을 느낄만하므로 차라리 성산면으로 이전하는 것이 적당하다는데 따랐다.
양천면(良泉面)에서 내곡동(內谷洞) 및 외동(外洞)을 분할해서 고령면(高靈面)에 편입을 요하는 것은 앞의 2동은 읍내면(邑內面, 장래의 고령면)에 인접하고, 경제적 관계가 밀접해서 교통이 편리하므로 양천면을 개진면(開津面)과 병합해서 그 중앙에 면사무소를 둘 때에는 관계가 밀접하지 않아 반대하는 방향으로 향해서 2리 반 이상 하지 않을 수 없음에 따라 가야천(伽倻川) 이서(以西)의 앞에 기록한 2동을 고령면으로 이속함으로써 면치상의 편리를 헤아린다는데 있다.
고령읍의 과거 명칭인 읍내면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적어도 조선시대에도 고령읍이 읍내면으로 불렸다는 것은 고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872년 발행된 조선시대 고지도(서울대 규장각 소장)에는 현재의 고령읍을 읍내(邑內)로 지칭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읍내면(邑內面)이란 명칭은 전국적으로 많이 보이는데, 1914년 일제는 읍내면이라는 행정구역 명칭을 변경하면서 군의 명칭을 그대로 가지고와 그 명칭 또는 유사한 명칭으로 변경했음을 알 수 있다. 경남 남해의 읍내면이 남해읍으로, 경북 영양의 읍내면이 영양읍으로, 경북 영덕의 읍내면이 영덕읍으로 등 이 같은 읍내면 명칭 변경은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읍내면은 조선시대 새로 설치된 행정구역의 치소를 담당하기 위해 부여된 행정구역 명칭으로, 각 현·군의 읍내면은 해당 현·군의 행정기관이 자리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고령군의 명칭을 1413년(조선 태종 13년) 개칭된 고령현으로 삼는 것은 타당하나, 고령읍의 명칭을 군의 명칭과 함께 변천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으며, 조선시대 이전에는 고령읍의 명칭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조선시대에는 고령읍이 읍내면으로 불렸고 1914년 일제에 의해 고령군의 명칭을 그대로 따른 ‘고령’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글 박장호
주)대가야신문 대표
사)대가야향토사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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