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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칼럼

[역사칼럼] 역사 바로 잡기(Xl), ‘고천원’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명분이다.

[255호] 입력ㆍ발행 : 2015-07-27

“오늘날의 경북 고령 땅이 옛 고천원(高天原)이라는 가능성이 큰 것 아닙니까. 고령 근처인 경남 거창군 가조면 가야산국립공원 안에 가야산의 정상인 우두봉(牛頭峰)이 있거든요. 이 산 밑까지는 고령에서 약 35km 거리인 만큼 옛길을 걸어간다면 하룻밤 사이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아마데라스(天照大神)가 고천원을 떠나는 손자 니니기미코토(瓊瓊杵尊·以下)에게 소위 ‘3種의 神器(신기)’를 주었습니다. 그 ‘3종의 신기’는 고령읍 일대에 있는 고분을 발굴하면 흔히 나오는 유물입니다. 내가 설립한 가야박물관에는 ‘3종의 신기’와 생산연대가 같은 철검 세 자루, 비취 곡옥 10개, 동경(銅鏡) 50장이 진열되어 있어요. 마부치 가즈오 교수는 이것을 보고는 고령이 고천원의 옛 땅임을 확신하더군요”
가야대학교 고령캠퍼스 내에 ‘고천원비’를 세운 고 이경희 총장이 지난해 2월 조선뉴스프레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그는 ‘고천원’이란 지명이 옛날 ‘고령’이라고 주장한 일본의 국어학자 마부치 카즈오 교수(1918~2011)가 쓴 「高天原 故地, 1997」를 근거로 1999년 6월 28일 고천원의 옛터이며 연고지라는 의미에서 ‘고천원고지(高天原故地)’라 새긴 비석을 세워 이때부터 해마다 고천원제를 열기 시작했다. 2000년 6월 28일에는 고천원거주신계보(高天原居住神系譜)를 적은 비석도 세웠다. 2005년부터는 고령군의 지역축제인 대가야체험축제의 연계행사가 되어 축제기간 중에 제사와 학술행사도 열린다.

그렇다면 고천원이 무엇이며, 가야산의 우두봉이 왜 중요한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신화를 우선 알아야 한다.
‘고천원비’ 옆면에 새겨진 ‘건립 취지문’에는 “이곳이 가야제국의 宗家(종가)인 任那(임나)가야의 옛 땅이며, 일본문학박사 마부치가 일본 신화 속에 나오는 高天原(고천원)으로 비정하고 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일본의 고서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며, 고천원은 ‘하늘 신들의 세계’이다. 창조신이자 일본 천황가의 황조신(皇祖神)인 이자나기(伊弉諾神)와 그의 아내 아자나미(伊邪那美)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와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鳴尊) 등 3신들을 낳았다.
신령들은 이자나기에게 세상을 창조하라며 보석으로 장식된 마법의 창을 주었다. 이자나기가 창을 바다 속에 넣고 휘휘 돌렸다. 이자나기가 혼돈의 바다에서 창을 꺼내 보니, 창끝에 바닷물 몇 방울이 응결되어 있었다. 그 방울들은 도로 바다 속으로 떨어져 오오야시마(おおやしま)가 되었다. 이것이 현재의 일본 열도가 된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자손인 니니기노미코도(瓊瓊杵尊)가 일본열도 큐슈지역에 강림(천손강림)을 했다. 고천원을 떠날 때 구리거울(銅鏡), 쇠칼, 굽은 옥(曲玉)의 세 가지 신기(神器)를 가지고 왔다.  「고사기」에는 “여기는 카라구니(韓國)을 향하고 있고... 아침 해가 바로 쬐는 나라, 저녁 해가 비치는 나라이니라. 그러므로 여기는 매우 좋은 땅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후 그의 후손이자 천황가의 시조로 알려진 야마토이와레히코(神武天皇 진무천황)가 일본의 초대 왕이 되었고 그의 자손들이 왕위를 이어받아 현재 아키히토 천황까지 125대를 이어 오고 있다는 게 일본왕조의 계보이다.
한편, 스사노오는 자라면서 고천원에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 이를 보다 못한 누나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는 스사노오에게 화가 나서 동굴로 숨어버린다. 태양의 신이 숨어버리자 세상은 암흑으로 덮이고 다른 신들이 스사노오를 추방하고 아마테라스를 동굴에서 나오게 한다. 추방된 스사노오는 아들과 함께 신라국에 내려와 소시모리(曾尸茂梨)에 살았다. 「일본서기」에는 “나는 어머니의 나라에 가고 싶어 울고 있습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후 흙으로 배를 만들어 타고 동쪽으로 항해하여 이즈모국에 도착했다. 이즈모국은 오늘날 시마네현 이즈모 지역이다.

일본신화는 천신(하늘에서 내려온 신)과 국신(일본열도 지역의 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론적으로 천신들에 의해 국신들이 정복되어 가는 역사이다. 천신 세력은 큐슈지역의 니니기 세력과 이즈모국의 스사노오 세력으로 이 두 세력은 나라지역으로 이동해 충돌하게 된다. 결국 스사노오 세력은 종교를 니니기 세력은 정치를 맡는 분업의 형태로 일본 최초의 통일국가인 ‘야마토 왜’ 정권이 수립된다.

일본과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에 따르면, 이 신화에서 스사노오가 강림한 소시모리가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배를 만들어 타고 동쪽인 일본으로 가 이즈모국을 세웠다고 일본고서에서 기술함에 따라 소시모리가 한반도 어디일 것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주장에 따르면, 소시모리는 이두식 표현으로 우두, 우두봉, 우두주, 우수주, 등으로 표현되며 소머리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춘천 소양강가에 있는 우두산을 지목했다. 실제로 일제는 이를 근거로 1918년 3월 춘천신사를 건립했으며 이를 강원신사로 승격했다. 전국에서 4번째로 세워졌고,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에 이어 전국 8대 국폐신사(국가가 관리함)의 하나로 규모와 신격이 높았다.
해방 이후 강원신사는 친일 도지사의 미온적인 대처와 미군 시설물로 변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때문에 춘천에서는 현재에도 이 신사의 철거를 주장하는 여론과 과거의 역사를 잊지 말자며 보존하자는 여론으로 팽배해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춘천시는 소시모리가 춘천의 우두산이라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경남 거창군이다. 거창군은 거창군 가조면에 위치한 우두산이 소시모리라며 “일본 신들의 고향”이라 홍보하고 있다. ‘마상리’는 고천원 고지의 중심지로, ‘고만리들’은 고천원의 신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궁배미’는 고천원 주재신이 살았던 궁궐터로, ‘바람굴’은 아마데라스가  스사노오의 횡포를 피해 은식하였던 천석굴로, ‘달뫼’는 아마데라스가 천석굴에 은신함으로써 고천원 천지가 암흑천지로 변하자 장닭이 일제히 모여 울었던 곳으로, ‘우두산’은 스사노오가 고천원에서 천강한 신라국 소시모리로, ‘장군봉’은 백마를 탄 장군  스사노오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당집’은 아마데라스를 구출하기 위하여 여신 아메노우즈메가 굿판을 벌린 곳으로, ‘가소천’은 아마데라스와 스사노오우가 대치하였던 고천원에 있는 강으로 설명하고 있다. 일본 미야자기현 니시우스키군 다카치호쵸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설명이다.
다카치호쵸(高千穂町)는 국내에도 올레길로 잘 알려진 일본 신들의 고향이다. 이곳에는 실제 설화의 배경이 되는 지명과 장소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다카치(高千)호 신사는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현재 일본인들이 일본 신들의 고향이라 보존하며 홍보하는 다카치호 마을을 두고 거창군이 나서 가조면의 우두산이 일본고기의 소시모리라 주장하는 이유를 어떻게 납득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고 이경희 가야대학교 총장도 가조면의 우두산이 소시모리라고 지목하고 있다. 다만 고천원의 위치를 거창군에서 주장하는 ‘마상리’나 ‘고만리들’이 아닌 가야대학교 고령캠퍼스 내라는 것만 다르다. 소시모리의 위치가 가조면의 우두산이라 하더라도 고천원은 천상의 세계이기에 한반도의 특정 지역을 지목하는 것은 모순이 있다. 그럼에도 고천원이 고령이라는 주장은 과거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이 같은 주장이 일제 강점기 식민사학자 또는 일본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는데 있다. 이들은 소시모리가 한반도로 비정된다고 가정하고, 소시모리에 강림한 스사노오와 그의 아들을 환웅과 단군으로 해석한다. 한국과 일본의 조상이 같다는 것이다. 이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의 배경이 된다. ‘일선동조론’이란 한국고대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조선과 일본은 같은 민족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합리화한 이론이다. 이와 함께 임나일본부설을 끌어 들여 일본은 태고 이래 조선이 일본의 지배하에 있어서 일본에 대해 외국·외민족이 될 수 없으므로 일본에 흡수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일제의 조선 강점을 합리화 한 것이다. 필자는 임나는 대마도라 확신한다.(다음호에 기재)

일본이 고대사를 인용해 한국과 일본이 같은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까닭의 배경에는 이 같은 논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을 근거로 일제는 ‘내선일체’라는 구호를 외치며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등 황국신민화와 민족말살정책을 폈던 것이다. 일본을 만든 신이 한국도 만들었기에 당연히 신사참배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이다. 이 같은 논리로 일제는 만주와 몽골의 제민족도 포함시켜 중국대륙까지 확장하겠다는 대아세아주의(大亞細亞主義) 정책을 펼쳤다.
식민주의 사관의 배경에는 황국사관이 있으며 황국사관의 배경에는 기기사관으로 일컫는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배경이 되고 있다. 그러나 친일 식민사학자를 제외한 한일 역사학계에서는 기기사관을 부정하고 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많은 모순점이 있기 때문이다. 「고사기」는 712년에 「일본서기」는 720년에 만들어졌다. 대가야를 비롯한 가야세력과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뒤 일본에 의해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기술한 책으로,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국가와의 관계를 기술함에 있어 일본 중심적으로 기술했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황국사관의 주요 이론적 근거가 되는 기기사관은 소시모리의 위치(일제는 춘천으로 비정), 일본 신공왕후의 삼한정벌 신화(필자는 대마도 정벌이라 주장함), 몽고침략 당시 가미가제(神風)에 의한 신국 사상의 형성, 한반도 임나경영설(필자는 임나를 대마도라 주장함) 등이 있다. 이러한 이론 또한 일본에 의해 날조되거나 왜곡되었을 것이란 것이 의식 있는 한일역사학자들의 주장이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5월 21일 이를 증명하는 재판이 열렸다. 비공개를 진행된 이 재판에 기소된 사람은 조도전(早稻田)대학의 교수였던 진전좌우길(津田左右吉: 쓰다사우기찌 1873-1961) 교수이다. 재판장 중서요일(中西要一 나까니시 요이찌)은 그에게 금고 3개월, 집행유예 2년을 언도했다.
기소된 내용에 따르면, “... (중략) 중애천황(仲哀天皇) 이전의 역대(歷代)에 대하여서는 그 계보에 관한 재료가 존재한 형적이 없고, 그에 관한 역사적 사실도 거의 전하여 있지 않다는 등, 황공하게도 신무천황(神武天皇)으로부터 중애천황(仲哀天皇)에 이르는 역대 천황의 존재에 대하여 의혹을 품게 할 우려가 있는 강설(講說)을 감히 함으로써 황실(皇室)의 존엄을 모독하는 문서를 조작 ..., 1939년 6월경, 그리고 같은 해 10월경 각각 100부, 같은 해 12월경 10부를 발행...”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고서의 사실관계에 의문을 품는 일본역사학자들도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일제가 조선강점 직후 역사서를 포함해 20여만 권이 넘는 각종 도서를 수거해 소각한 것과 연관되어 있다. 1910년 한일병합 이전에 한국의 고대사에 대한 논문을 살펴봐도 57건의 논문이 일본인에 의해서 써졌으며 국내 연구는 전무하다.
이처럼 일제는 조선을 강점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하였으며, 강점 직후부터 한반도의 역사와 관련된 도서를 수거·소각하고 신화 수준의 일본고서 내용을 한반도의 고대사와 지명 등에 연관시켜 ‘기기사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일본고서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더라도 고천원은 천상의 세계이기에 인간의 세계인 한반도에는 존재할 수 없으며, 스사노오가 강림했다는 소시모리도 ‘소머리산(우두산)’이라 추측할 뿐 정확하지 않으며, 스사노오가 흙으로 배를 만들어 타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다는 기점이 한반도라는 근거도 없지만 만일 한반도라 해도 바다에 인접해야 함으로 적어도 가야산 일대인 고령과 거창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 이경희 가야대학교 총장이 고령을 고천원으로 비정하여 비석을 세우고 매년 제를 지내는 까닭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더욱이 고령군에서 예산까지 매년 지원했으며 이제는 지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조례까지 만들었으니 가히 스사노오노미코토의 후예인 일본왕실이 매우 기뻐할 일이다.

글 박장호
주)대가야신문 대표
사)대가야향토사연구회 회장

사단법인 대가야향토사연구회는 1956년 5월 조직되어 올해 59년을 맞은 고령의 유일한 역사문화연구단체이다.
초대 회장을 맡은 김도윤 씨를 이어 허동량(2대, 1998), 이달초(3대, 2003), 김인탁(4대, 2005) 씨가 회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6월 26일 박장호 대가야신문사 대표가 5대 회장에 취임했다.
대가야향토사연구회는 대가야 역사·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기고나 연구저서·논문을 발표하는 등 지역의 정체성 확립과 애향심 고취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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